알츠하이머라는 병은 단순히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가 천천히 사라져가는 과정입니다. 영화 ‘스틸 앨리스’는 이 고통스러운 여정을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2025년 현재, 인구 고령화와 인지질환의 증가로 인해 이 영화는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감정적 울림을 주며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의 현실과 시작
앨리스 하울랜드는 콜롬비아 대학교의 명망 있는 언어학 교수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 그리고 성공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강의 도중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조깅 중 익숙한 길에서 방향 감각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이었습니다.
알츠하이머는 대체로 65세 이후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기 발병은 그보다 이른 40~50대에도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성공적이고 활기찬 삶을 살던 중년 여성이 점차 자아를 상실해가는 과정을 보다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앨리스는 점점 언어 능력을 잃어가며, 동시에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했는지를 점점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병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합니다. 메모, 스마트폰 알림, 비디오 다이어리 등은 단지 도구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려는 ‘의지’의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영화는 단순히 병세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의 내면을 매우 진솔하게 묘사합니다. 혼란, 수치심, 두려움, 그리고 깊은 외로움까지. 특히 앨리스가 “나는 아직도 나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이자, 알츠하이머 환자의 내면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가족의 역할과 감정의 변화
이 영화에서 가족은 질병을 둘러싼 또 하나의 중요한 테마입니다. 앨리스의 남편 존은 의사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처음에는 앨리스의 이상 증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진단 후에도 쉽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가족 간의 충돌은 필연적이며, 특히 간병이라는 실질적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해 갈등이 발생합니다.
딸 리디아는 예술가의 길을 택하면서 어머니와 가치관 충돌을 겪지만, 결국 가장 깊은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인물이 됩니다. 그녀는 앨리스가 인지 기능을 점점 상실해가면서도 여전히 감정과 존재의 본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합니다. 리디아가 낭독극에서 대사를 읽어주는 장면은, 언어를 잃은 앨리스가 감정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도 알츠하이머 가족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환자는 서서히 의존도가 높아지고, 가족 구성원은 개인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간병을 전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는 이들의 심리적 소진 또한 깊이 있게 다루고 있으며, 결국 간병과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돌봐야 한다’는 당위성을 넘어서, 환자와 간병인 모두가 서로를 지지해야 한다는 인간적인 접근은 이 영화가 단순한 ‘치매 영화’를 넘어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줄리안 무어의 연기와 연출의 섬세함
줄리안 무어는 이 영화에서 인생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녀는 극 중 앨리스가 병을 인식하고, 혼란을 겪고, 받아들이고, 점차 무너져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표현했습니다. 무어는 감정의 폭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눈빛과 동작으로 앨리스의 내면을 전달합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줄리안 무어의 대사는 점점 줄어들고, 표정과 눈빛이 이야기를 이끕니다. 말없이도 충분히 전달되는 절망과 저항, 그리고 희망은 이 영화의 감정선을 더욱 극적으로 만듭니다. 이 연기로 줄리안 무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연출 또한 감정에 집중된 카메라 워크를 택했습니다. 초반에는 일상적이고 평온한 시점에서 앨리스를 따라가다가, 병세가 깊어질수록 앨리스를 클로즈업하거나 아웃포커싱으로 처리하여 그녀의 인지 혼란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조명과 색채의 변화 역시 탁월합니다. 따뜻하고 밝았던 화면은 점차 어두운 톤으로 바뀌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감정에 몰입하도록 유도합니다.
영화의 음악 또한 절제되어 있으며, 과도한 감정 유도 없이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이는 관객이 스스로 앨리스의 입장이 되어 ‘기억 상실’이라는 인간의 가장 두려운 영역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스틸 앨리스’는 단지 한 여성의 병과 싸움을 그린 영화가 아닙니다. 스틸앨리스는 기억, 자아, 가족,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 성찰의 영화입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언젠가 자신의 이름조차 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나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2025년 현재,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이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가족의 의미, 간병의 현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게되며, 한번쯤 보기를 추천하는 영화입니다.